단 4시간의 생방송으로 폭력시위 제압
  • 최백수는 오늘이 토요일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오늘이 2차 시위를 한다고 예고한 날이다. 과연 스님들이 경찰과 민노총 간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갖고 문장대로 향하고 있다.
    지금은 전문화 시대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사회갈등을 중재하려면 당사자들이 승복할 수밖에 없는 권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스님들에게 무슨 전문지식이 있고, 무슨 권한이 있나?
    스님에게 부여된 권한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뿐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중생에게 전달하는 권한뿐이 없다. 그게 시위갈등을 중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최백수는 숨이 차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올라가는 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그만큼 생각하고 있는 게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눈을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하다. 현실감도 없다. 그저 조용하게만 느껴진다.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가. 혹시 스님들 눈에 세상이 저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이좋게 잘 놀지 왜들 싸우느냐고 달랠 작정인가.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사탕이라도 몇 개 사주면서 꼬실 작정인가?
    아니면 중재한다고 표방하면서도 은근히 민노총 측에 가담해서 폭력시위를 도울 의도인가?
    스님들은 성직자니까 공평하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종교이고, 스님들은 성직자다. 특히 속세를 떠나서 독신생활을 하니까 욕심도 없고, 어느 편에 치우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 공평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을 땐 재판을 받는 게 상식이다. 재판에 져도 승복하지 않는 세상이다. 1심, 2심, 3심까지 재판을 받고서도 승복할 수 없다고 판사를 칼로 찌르기도 한다.
    사법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을 스님들이 풀겠다고 나섰다. 물론 그런 용기를 가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소가 웃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최백수의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란 말이다. 자신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제가(齊家)는 물론, 치국(治國)도 하고, 천하도 평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님들이 치국을 하고, 평천하를 하려면 땡추란 소리부터 듣지 말아야 한다.
    여자 끼고 술 마시다가 망신당하고, 재산 싸움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감투싸움으로 뉴스에 나와서 망신당하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특히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 정치에 참견하고, 줄 서고 하는 일들이 모두 신도들을 팔아서 특권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최백수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문장대란 커다란 표석이 나타난다. 평생에 세 번 만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안내문도 보인다. 지금까지 문장대에 오른 횟수가 4, 50번은 족히 될 것이다. 문장대에 자주 오른다고 극락에 갈 수만 있다면 백 번도 더 오를 것이란 생각을 하며 걷는다.
    휙 바람이 불더니 신문 한 장이 날아와 눈을 가린다. 최백수는 신문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다. 오늘 2차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지금쯤 서울 도심이 난장판이 됐어야 맞는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펼쳐 든 신문은 오늘 아침 조선일보다. 궁금증을 풀 수는 없지만 눈길을 끄는 칼럼이 하나 있다. 윤슬기 TV조선 사회부 차장이 쓴 글이다. “만리장성을 네 번 가봤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파른 산을 오르면 웅장한 돌벽이 끝없이 펼쳐진다.”라로 시작되는 서두를 읽으면서 기행문을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녀의 글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오랑캐가 오죽 무서웠으면 돌덩이를 메고 산을 올랐겠나? 만리장성에서 중국인의 오랑캐 공포증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이 한반도 길이 6배의 장성을 쌓고도 못 막아낸 오랑캐 중 하나가 만주족인데, 그 만주족이 바로 종편의 TV조선이고, 만주족에게 망한 명나라가 지상파 방송“이라고 비유했다. 최백수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400년 전 춥고 배고픈 만주땅에서 야금야금 중원을 차지해 청(淸) 제국을 세운 게 만주족이다. 인구 100만으로 1억 대국 명(明)을 먹었다.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자신들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만주족은 명과 인삼 무역에 사활을 걸고 은(銀)을 빨아들였다. 자본을 축적하는 동시에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땐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천하를 훔쳤다.“고 설명했다.
    TV조선 윤슬기 차장은 만주족이 명나라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듯이 종편도 지상파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제1차 도심시위였다. “서울 도심 시위가 벌어진 지난달 14일 TV조선을 보는 시청자들 입이 벌어졌다. 시위대가 경찰 버스를 흔들고, 물대포가 반격하는 '전쟁터'를 4시간 생중계했다.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경찰 버스와 춤추는 쇠파이프가 TV로 나갔다.
    이런 시위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상을 잘 몰랐다. 기존 방송 뉴스의 공식은 1분 30초 리포트다. 시위대와 경찰 영상을 대체로 같은 분량으로 다룬다. 우리는 4시간짜리를 무삭제, 무편집으로 틀어버렸다. 판단은 시청자들이 했다. 폭력 시위 비판 여론이 폭발했다.“
    그녀의 의도는 결론 부분에서 표출되었다. “지상파 인력 3분의 1도 되지 않는 '변방의 방송사'가 지난 4년 새 '시청률 영토를 5배 확장됐다. 우리는 중원을 노린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때 최백수의 핸드폰에서 휘파람 소리가 난다. 카톡이 왔다는 신호다. 궁금한 마음으로 급히 알림창을 연다. 2차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속보다. 결국 TV조선 채널A 등 종편은 단 4시간의 생방송으로 만주족이 명나라를 먹은 것처럼 지상파의 독점적인 영향력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시위 용기마저 제압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속보가 온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