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웅의 소설식 풍자칼럼 ‘사랑 타령(6)’
  •  
  • “관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들린다. 차 안에서 듣는 소리지만 엄청나다. 어떻게 살지? 말로만 듣던 비행기 소음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청주공항에서 떠오르는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 야트막하다.
    청주공항은 충청권의 관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세종시가 떠오르고, 세종시 하면 오송과 청주공항이 연상된다. 청주사람들이 충남 연기군에 행정도시가 생긴다고 할 때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오근장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덩치가 큰 오창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과 같은 심리다.  길목을 지킨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이치 때문에 환영했을 것이다. 행정도시가 생기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 테고, 오송이나 청주공항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 덩달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기대가 잘못되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뉴스도 잇따르고 있다. 충북에서 세종시로 유출된 인구가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인구라면 독립선거구에서 탈락위기를 맞고 있는 보은‧옥천‧영동을 살리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는 관문역할마저 상실할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2중부고속도로가 생기면 오송역이 무용지물이 된다. 세종시의 관문역할로 먹고살려고 만든 오송은 존재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심지어 세종시에 KTX역이 생긴다는 말까지 나돈다.
    “점입가경이잖아."
    최백수는 얼핏 중얼거려 놓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보다는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오송역과 쌍벽을 이루며 관문역할을 하는 게 청주공항이다. 오송이 관문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청주공항이라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해야 충북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청주공항은 문제가 더 많다. 말이 국제공항이지 중국 등 동남아 노선 몇 개 말고는 국제노선이 거의 없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출장가려면 가까운 공항을 두고 인천까지 가야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전망이 없다. 그런 데다 집값까지 비싸니 세종시로 이사 가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을 바로 잡는 게 사는 길이고,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그걸 하지 못하면 잘살아 보려고 유치한 세종시가 청주를 잡아먹는 꼴이 된다. 살모사를 키운 셈이다.
    “결국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판 격이네.”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청주시장이다. 그런데 청주시장은 제 살기도 바빠서 신경조차 못쓸 형편이다.
    최백수의 차는 운 좋게 신호등 두 개를 무사통과 한다. 성모병원 앞에서 차는 멈춘다. 최백수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본다. 딱 8분 걸렸다. 이 8분 때문에 사람들은 청주와 오창을 구분하는 것이다.
    “8분을 잃은 대신 난 무엇을 얻었나?”
    2년 전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오창까지 가게 되었고,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다가 이사까지 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오창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세상살이가 다 이런 건 아닐까? 열심히 산 덕분에 오늘이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겐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하게 된다.
    승용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택시 영업을 하는 것이고, 경운기로 제조되었으니 논밭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닐까? 승용차로 논밭을 갈 수 없고, 경운기로 택시영업을 할 수 없는 이치다. 지금 내가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도 다 용도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럼 난 뭘까?”
    승용차일까? 경운기일까? 의문은 또 있다. 어떤 길을 달리느냐는 점이다.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면 운이 좋은 것이다. 반대로 논둑을 달리는 승용차는 악운을 만난 것이다. 경운기도 마찬가지다.
    논둑을 달리면 용도대로 쓰이는 것이지만,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운은 좋은데 잘못 태어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백수는 사거리에 서있다. 막상 오창으로 이사를 오니 막막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생활환경도 열악했다.
    최백수가 정을 붙인 것은 새집뿐이었다. 12년을 산 헌 아파트에선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이 있었다. 졸부들이 큰 집을 사서,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고, 사람들을 초대해 자랑하는 심리를 알 것도 같았다.  

    “오창을 청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우연히 만난 이웃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청주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출신학교부터 따지지만 오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연고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주사람들에겐 언제 무슨 학교를 나와 무슨 일을 했는지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오창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전력을 과시하려는 태도를 비웃는 말투였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현재만 의식한다는 뜻이다.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최백수의 눈에 무언가가 자꾸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승훈 청주시장이다. 검찰청에 불려가면서 허둥대는 모습이다. 고급승용차가 논둑을 달리는 모습처럼 어색해보였다. (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