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 이게 사실이라면 신문방송에 벌써 나왔을 것이다.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종편에서 얼핏 본 것도 같지만 못 본 것이 더 많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인터넷의 익명성과 무책임성을 악용하여 야당을 공격하려고 퍼트리는 게 아닐까?

    조작된 괴문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삭제하지 못한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문제인이나 안철수 박원순 등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무성 대표가 친일파라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친일 교과서로 미화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니까….

    “이러다간 삼국시대 조상까지 들추는 게 아닐까?”
    맞아! 비슷한 얘기를 어디서 본 듯하다. 최백수는 카톡을 뒤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거다. 며칠 전 누군가에게 받아놓고 대충 읽다가 식상해서 덮어둔 것이다.
    “그냥 넘기지 마시고, 좀 열어 보시고, 보내준 분 성의를 봐서 많이 공유하세요.”
    란 말이 애처롭다. 내용은 더 논리적이다.
    “과거사를 논하려면 이성계가 정권을 잡은 것을 그 후손인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 책임을 물어야겠지요?”
    맞는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먹고 살기 위해 굽신거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민군이 총칼을 휘두르던 6·25때 그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이니까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아무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야당의원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과거를 들먹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익도 없는 논쟁을 확산하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백수는 어떻게 그걸?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간단하다. 국정원이나 경찰 같은 공안기관에서 진위를 가려주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원하거나 양해할 때에 한해서다. 더 이상 보관해야 할 가치가 없는 글이라고 판단한다.
    “지워버리자.”
    막 삭제 버튼을 누르려다간 멈칫한다. 이 내용을 10명에게 보내라는 문구가 마음을 잡는다. 만약 10명에게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10명이 10명씩… 100명 1000명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 1천만 명….

    기하급수적으로 퍼질 것이다.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다. 이게 바로 SNS의 위력이다. 이 위력 때문에 메이저 언론이 여론조작을 못하는 것이다. 갑자기 유비통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유신정권 시절 정보기관에서 언론을 검열할 때 유행하던 말이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해도 군사정권을 비난하는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았다. 유비통신 때문이었다. 민초들이 울분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면 속마음을 토해내고 싶고, 입과 입을 통해 확산하는 게 바로 여론이고 민심이었다.
    이 무렵 유일한 통신사가 연합통신이었는데, 그 이름을 빗댄 게 바로 유비통신사였다. 연합통신이 관제 언론을 확산하는 역할을 했다면 유비통신은 민심을 확산하는 역할을 해서 상대적인 개념으로 비교됐다.
    최백수는 어떤 사명감을 느낀다. 10명에게 보내야만 의무를 다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문제는 슬며시 겁이 난다는 점이다. 사실도 아닌 말을 인터넷에 퍼트렸다가는 명예훼손으로 잡혀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내가 지어낸 말도 아니고, 내가 먼저 퍼뜨리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서 온 내용을 주변 사람에게 전달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법에 걸릴까? 괜찮을 것도 같고,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괜한 일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움츠러들다가도, 이게 만약 거짓이라면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야당의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투쟁하고 까발리는 데는 도가 튼 선수들이다. 

    남의 일로도 피를 흘리며 싸우다가 감옥까지 가는데 제 일이라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최백수는 까맣게 밀려오는 먹구름을 보는 것처럼 불안감을 느낀다. 최백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6층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아까보다 어둑해졌다. 가로등은 다 꺼졌는데 해는 뜨지 않아서다. 근데 갑자기 온몸이 쑤셔대기 시작한다. 관절염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약으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관절염을 앓고 있다.
    무슨 병이든 다 괴로운 것이지만 관절염이나 신경통처럼 사람을 암담하게 하는 병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그 특성 때문이다. 소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부르는 반역성이다. 우리 몸엔 외부에서 병이 침투하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서 면역체계라는 것이 있다.
    나라로 말하면 경찰이나 군인 같은 조직이다. 우리 몸을 지키라고 존재하는 면역체계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군인이나 경찰이 총부리를 국민에게 돌린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게 바로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것 아닌가.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도당을 잡기 위해서 군인 경찰이 존재하는 것인데, 김일성 주체사상을 공부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군인이나 경찰이 되면 북한 공산당을 잡지 않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돌리지 않을까?
    “초기에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는데…”   
    근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왜 문재인은 김일성을 두둔하는 역사 교과서 문제로 그 난리를 치는 건가? 그것보다 급한 민생이 한둘이 아닌데…. 왜 좌편향 교과서를 두둔하는 문제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문재인이 그런 일만 하지 않았다면 벌써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최백수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말이 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던 공안검사 출신의 국정감사 참고인의 말이다.(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