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정상회담 성과’에 주목한다!
  • 李 竹 / 時事論評家

      “중·한 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관건적 시기에 처했다” 뛔국 시[習]따거가 거듭 말씀하셨단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관건적(關鍵的) 시기’라는 표현은 ‘사드 추가 배치 금지’와 ‘양키나라 미사일 방어 체계에 불참’과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즉, 이른바 ‘3불(不)’에 대한 이 나라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유보적 의미’로 해석된단다.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떤 경우도
    양키나라의 존재를 의식한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바로 그 ‘관건적 시기’에 진행된 이 나라와 뛔국 간의 정상회담이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소박·소탈한 이미지와 격(格)에 걸 맞는 ‘국빈’(國貧) 방문의 이모저모에 가려서인지,
    ‘정상회담의 성과’가 크게 돋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뛔국의 관영(官營) 신문은 “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국 골문에
    ‘자책골’을 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지 않는가. 이 나라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 관계자도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평가했다 하고.
      앞으로 이 나라 면세점이 유커[遊客]들로 북적거리는 것 말고도, 여러 결실을 얻을 거라고
    한다. “앞으로 두고 보면 어제 회담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까지 들린다. 
     
    허긴 앞으로 두고 보지 않아도 당장에 나타난 결실이 있긴 하다.
    펜과 주둥이를 제멋대로 놀리는 ‘기레기’들에 대한 패대기와 발길질 접대는 이 나라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다는 평가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와 결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한반도 평화·안정 확보를 위한 4대 원칙』[이하 4대 원칙]에 합의한 것이 아닐까 한다. 거의 ‘역대급’이라 할만하다.

  •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의 11월 18일, ‘물이라 불린 사나이’께서 “대한민국 어디에도, 어떤 형태로든 핵무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해 연말에 북녘과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란 걸 채택했다.
      이후에 계속된 북녘 세습독재정권의 기만(欺瞞)과 공갈(恐喝)과 협박(脅迫)과 도발(挑發)로
    점철된 ‘한반도 평화·안정’의 역정··· 그 역정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금자탑을 세울 장거(壯擧)를 이룩했다면 과언일까. 과거의 ‘역정’에 비추어 상식선에서 그 속내를 들여다봤다.

      ①한반도에서 전쟁 불가
      “핵전쟁”, “핵 참화(慘禍)”를 수시로 부르짖고 “서울 불바다”를 줄곧 외치며 준비해 온 북녘
    세습독재 무리는 그대로 놔둔 채, 저들의 혈맹(血盟)과 이런 합의를 했다는 게 많이 거시기하다. 혹여 지난 6·25전쟁이 ‘북침’(北侵)임을 인정하고, 향후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건 아니리라 믿지만...
      전쟁사를 연구한 누군가는 이렇게 적기도 했단다.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②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확고한 견지
      언제 적부터인지 뛔국의 입버릇이 된 주요 메뉴 아닌가. 본질은 북녘의 세습독재자가 계속 핵·미사일의 재고(在庫)를 늘려나가는 것[肥核化]과 이 나라에서는 원전(原電)을 비롯하여 방사능 동위원소가 쓰이는 X선 촬영조차도 원천 차단할 듯이 덤벼들어야만 하는 걸[完璧 非核化 또는 無核化?] 함께 뭉뚱그리는 것이지 않나.

      ③모든 문제의 대화·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지난날 ‘한반도 평화·안정’의 역정을 되짚어 보면, 북녘과의 대화·협상은 그걸 전후하여 늘 상 모종의 대가(代價)가 따랐다. 그리고 역시, ‘최고 수뇌부’ 간의 맞짱이 주효했다. 이 나라 몇몇 수뇌께서는 엄청난 전후(前後) 비용을 떠안고 성사시켰다. 그것에 안달이 났었던 분들도 계시다.
      앞으로도, 특히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습독재자의 널찍한 바짓가랑이를 직접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민족애’에 호소할 그날이 오기만을 고대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짝사랑은 순수·숭고한 거니까...

      ④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도움
      과거부터 전해 내려오는 ‘매우 바람직한’ 전통을 되살리자는 깊은 의미가 배어있는 듯하다. 이 나라 ‘평화주의자’들이 떠 받드는 남북 관계의 전범(典範)으로 갈음하자.
      “우선, 북녘이 원하는 걸 원하는 시간에, 또는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원하는 장소에  갖다 안긴다. 그리고 북녘은 계속 남녘의 뺨을 갈기고 남녘은 더 때리라고 계속 다른 뺨을 내미는 것을 상호 이해함으로써 관계를 유지·발전시킨다”
      재연(再演)의 시점이 언제쯤 될지 기대(?)된다. 하여간에...
     
      여러 측면에서 서로가 상대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닌 만큼, ‘4대 원칙’은 서로의 기대가 합쳐진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그 합의가 있고난 후에
    “저는 양국이 운명적 동반자라고 믿는다”는 감동의 멘트가 나왔을라고...
      따라서 이번 ‘4대 원칙’은 시[習]따거가 부르짖어온 ‘뛔국 몽(夢)’과 이 나라의 ‘꿈’[夢]이 어우러진 가히 옥동자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사족(蛇足)이긴 하나, 굳이 그 의의를 더듬어 본다면...

  •   뛔국의 입장에서는 양키나라와 그 군대를 이 땅에서 밀어낼 짙은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길몽(吉夢)이 될 터이다.
      이 나라야 뭐, 뛔국을 큰어른으로 받들어 뫼시면서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거나, 북녘 세습독재자에게 머리 조아리고 무릎을 꿇거나 중의 하나인 화끈한 운명(運命)이 펼쳐질 걸 꿈속에서 보았지 않았겠나. 흉몽(凶夢)? ‘흉몽대길’[凶夢大吉 : 불길한 꿈은 오히려 길할 징조]이란 말도 있긴 있다더만...

      67년 전 이즈음, 저 북녘의 흥남(興南)부두에서는 뛔국 ‘인민해방군’의 공세에 밀려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이 나라와 양키나라 군대, 그리고 자유를 찾아 남녘으로 내려오려는 실향민들의 ‘철수 작전’[12월 15일∽24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7개월여가 지난 후...

      “... 36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공산주의자들은 어떠한 맹약(盟約)이라도 그것을 깨트리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는 결코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자유시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우리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오직 하나만의 길은 평화가 없을 때 부러운 눈치로 평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 본토가 자유진영의 편으로 환원하게 된다면 한국 및 인도지나(印度支那)의 전쟁은 자동적으로 승리적 귀결을 짓게 될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은 이 세계를 유(柔)하면 노예가 되어버리고 마는 어렵고도 무서운 세계를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1954년 7월 28일 오후,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양키나라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고 있었다. 연설은 박수갈채로 서른 세 번의 중단을 거듭했고...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