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기사에 "국세청 일 잘한다!" 격려성(?) 댓글 눈길
  • 지난 8일 매우 주목할 만한 기사가 타전됐다. 국세청이 '한겨레신문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미디어오늘'의 단독 보도가 전해진 것. 미디어 전문 비평지가 한겨레 내부 소식통의 전언을 인용한 기사라 오보일 확률은 적었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국세청 조사1국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9일까지 약 한 달간 한겨레에 대한 1차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겨레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기업이니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세무조사를 '언론사 길들이기 차원'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시각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왜 하필 한겨레인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세무조사는 통상 5년 주기로 이뤄진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5년마다 조사를 받는 건 아니다. 우선적으로 매출 규모가 1천억원이 넘는 거대 신문사들이 조사를 받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언론사들은 장기간 세무조사를 받지 않거나, 성실신고 검증이 필요할 경우 대상이 된다. 형평성 차원에서 무작위 추출로 조사 대상이 가려지기도 하지만 매년 1만 7,000건 정도의 세무조사가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매출 규모가 큰 신문사나 방송사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겨레신문의 매출액은 연간 8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 매년 2천억 이상의 매출고를 올리는 4대 일간지(조선·중앙·동아·매경)와 비교하면 중견 기업 수준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한겨레와 매출 규모가 엇비슷한 경향신문이나 서울신문은 국세청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메이저신문인 조중동도 마찬가지였다. 국세기본법에 의하면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하기에 앞서 최소한 10일 전에 납세 대상자에게 조사 계획을 통보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연말 세무조사에서 조사를 받는 언론사는 한겨레신문이 유일한 셈이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귄위주의적?

  • 올해 상반기 한겨레신문과 문재인 대통령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 '아주 사소한 문제로' 마찰이 빚어진 적이 있다. 지난 5월 14일 공개된 '한겨레21(1162호)'의 표지사진이 문제였다.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여타 후보들이 '한겨레21'의 표지를 단독으로 장식해온 반면 문재인 후보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겨레 측에 반감을 품고 있던 일부 지지자들은 막상 '한겨레21' 표지에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올라오자 이번엔 "구도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당시 '한겨레21'에 올라온 악플 중 상당수는 '한겨레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얼굴 사진을 사용해 문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는 억지성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해명을 하기에도 우스운 이같은 댓글들이 쇄도하자 한겨레신문의 안수찬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집장 2년하고 기자들이 만들어준 표지액자 하나 받았다"며 "신문에 옮긴 뒤로 시간이 좀 남는다. 붙어보자. 늬들 삶이 힘든건 나와 다르지 않으니 그 대목은 이해하겠다마는,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절을 온통 똥칠하겠다고 굳이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 덤벼라. 문빠들"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부채질했다.

    감정적인 네티즌의 댓글에 언론사 기자가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안수찬 기자는 "죄송합니다. 술 마시고 하찮고 보잘것 없는 밑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문제가 된 글은 지웠습니다. 한겨레에는 저보다 훌륭한 기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자숙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거듭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네티즌에게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세청 일 잘한다"는 네티즌, 알고보니‥

    이처럼 해묵은 얘기를 장황하게 다시 늘어놓은 이유는, 최근 한겨레가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미디어오늘 기사가 공개된 이후 '좌파 성향'의 커뮤니티 게시판에 "국세청 일 잘한다!"는 격려성(?) 댓글이 쏟아지고 있는 이상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뇌리 속엔 여전히 문 대통령을 귄위적으로(?) 묘사한 사진을 올리고, 김정숙 여사에게 '영부인'이나 '여사'라는 호칭 대신,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 등으로 표현한 '오만한 한겨레'가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이들 네티즌은 "군부독재 시절 권위주의 의식의 잔재라는 판단에 '여사'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해명을 듣고도 '한겨레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며 맹비난을 토해냈다. 권위주의를 연상케 한다며 위에서 올려다보는 사진조차 시비를 건 이들이 거꾸로 '권위주의적 단어'라고 주장되는 '여사'라는 호칭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한겨레21'의 표지사진이 권위적이라는 주장 만큼, 한겨레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치적인 배경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음모론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다. 국세청이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한다면 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내년 상반기 쯤 이뤄질 공산이 크다. 그때에도 모든 세무조사를 '정치적'이라고 매도할지 궁금하다. 한겨레에 대한 세무조사를 고소해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이 정권이 하찮은 앙갚음을 하고자 국가기관을 움직이는 '열등한 정권'이 돼 버린다는 사실을 이들은 왜 모를까.  

    [사진 =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162호 표지사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