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도발 ‘비난’,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어...
  • 8·15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가 8월15일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8·15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가 8월15일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이석기, 한상균 등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 김홍열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아내 정지영 씨.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석방하라는 목소리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울려 퍼졌다. 양심수 구명활동 집회도 아닌, 8·15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주최한 ‘反사드 집회’에서다.

    광복절 오후 4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진보단체 주최 ‘반 사드 집회’ 중앙 무대 앞에는 ‘전쟁위협 중단·평화협정 체결’, ‘박근혜 정권 희생양 이석기 의원·한상균 위원장 석방’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석기 전 의원은 북한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주요 국가 시설 파괴를 선동한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도심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형이 확정됐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대화만을 고집하는 ‘맹목적 평화주의자’들은 폭력집회를 주도하고 국가기간 시설 파괴를 선동한 反평화적 인물들을 ‘박근혜 정권의 희생양’으로 규정하고 석방하라는 주장에 동조했다. 정지영 씨가 무대에 올라 “제 남편(김홍열)과 내란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은 자주와 평화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선 분”이라며 “이제는 감옥 문을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자 참석자들은 열렬한 환호와 함성을 보냈다.

    참석자들은, 지난 2015년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각목, 쇠파이프, 철재 사다리 등을 이용해 경찰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수십 대의 경찰버스를 고철로 만든 도심 폭력사태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운 듯했다. 추진위가 “이 땅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는 것과 주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은 모두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밝힌 대목에서 이들이 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곳에서 만난 조OO(59·여) 씨는 “문재인 대통령만으로는 힘이 역부족”이라며 “한상균 위원장이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이석기 전 의원도 다시 국회로 돌아가 (현 정부에) 힘을 보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폭력의 주체들이 아니냐’고 기자가 묻자, 조 씨는 “트럼프 대통령은…”이라고 말을 흐렸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말을 돌렸다.

    집회 참석자 김OO(47) 씨는 “사실 한상균이나 이석기 석방을 이런 사드 반대 집회에서 외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면서도, “가치와 사상이 다르다고 구속하는 전 정부의 폭력적인 행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만큼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사드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고 덧붙였다.

  • 시위대들은 세종대로 사거리, 광화문광장을 거쳐 광화문 쪽으로 행진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시위대들은 세종대로 사거리, 광화문광장을 거쳐 광화문 쪽으로 행진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이날 집회 및 행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3시간 넘게 지켜보면서,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현재의 안보 위기를 사드 탓, 자유한국당 탓, 문재인 탓, 트럼프 탓으로만 돌렸다.

    조금만 걸어도 ‘사드 배치 철회하라’, ‘미국 패권 정책 협력 말라’ 등의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30~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복싱탭볼 치듯 공에다가 성조기를 그려놓고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기자가 관심을 보이자 잽, 스트레이트, 훅 3연타 펀치를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악랄하게 묘사한 그림이 보여 가까이 다가갔다. 이때 어디선가 물풍선이 날라 와 트럼프 대통령 이마를 명중시켰다. 여러 시민들이 한 손에 물풍선을 들고 힘차게 던졌다. 사전집회 격인 ‘8·15 청년 자주 독립선언’ 집회를 주최한 진보단체 ‘한국청년연대’ 회원들이 연 행사였다.

    추진위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한반도 방어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드의 망령이 이 땅을 떠돌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사드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사드배치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최근 미국 정부가 예방전쟁, 한반도에서의 무력 사용 운운하고 있는데, 그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권리는 없다”고 했다.

    나이키 신발에 노스페이스 티셔츠를 입은 김동훈(32) 씨는 “미국이 남북 분단의 원흉이고 지금도 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켜 사드 등 무기를 팔려는 속셈이 아니냐”며, “20~30년 후 이 땅에 살 후세를 위해서라도 즉각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최근까지 북한의 기습적인 미사일 도발은 13번 이뤄졌다. 북한에 온정적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런 식의 도발은 그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ICBM급으로 추정되는 화성14형 발사실험에 성공하는 등 도발의 수위를 더욱 높이면서, ‘대화와 평화’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을 고민에 빠트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을 자신들의 공으로 여기는 집회참석자들에게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 시위대는 행진 중에 미국대사관 앞에 잠시 멈춰서서 '사드 배치 반대' 구호를 외쳤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시위대는 행진 중에 미국대사관 앞에 잠시 멈춰서서 '사드 배치 반대' 구호를 외쳤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집회 참석자들은 시청 광장에서의 본 행사가 끝난 뒤,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광화문 주한 미국 대사관 쪽으로 행진했다. 오후 5시30분쯤 ‘촛불’을 상징하는 빨간 우산을 든 이들이 미국대사관 앞에 운집했다.

    하루 전 법원의 결정으로, 미국 대사관을 에워싸는 ‘인간 띠 잇기’ 행사는 금지됐지만, 참석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 노골적인 反美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트럼프는 사드 들고 이 땅을 나가라”고 힘차게 외쳤다. 행사 주최 측이 준비한 스피커에서는 “미국은 분단을 조장하고 실속만 챙겨왔다. 전쟁 연습하고 무기 팔아먹는데 속겠습니까. 다시는 속지 않겠습니다”라는 선동적 주장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민중의 노래’와 ‘임을 위한 행진곡’도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위아래로 휘저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미 대사관 직원이나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 언론사 특파원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오후 6시쯤 집회가 끝났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오늘 우리의 행동은 여기까지입니다” 참석자들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시간당 85mm의 강한 비가 쏟아진 탓에 서둘러 자리를 뜨는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 및 시위 참석자는 주최 측 추산 1만 명, 경찰 추산 6천명 정도였다. 기자가 직접 느낀 인파의 규모는 이날 현장에 투입된 경찰 병력 6천5백명 보다도 적었다.

    같은 날 6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광복72주년 광화문광장 시민음악회’는 관람객보다 행사 진행 관계자와 서울시 직원들이 더 많아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기자도 택시를 잡고 귀갓길에 올랐다.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넉살 좋은 택시 기사는 “저는 보수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안도 없이 사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간다”면서 “국민 대다수도 저랑 비슷한 의견일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tbs 의뢰로 정부의 사드 발사대 임시 추가 배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잘했다'는 찬성 의견은 71%, '잘못했다'는 반대 응답은 18.4%로 각각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8월2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13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최종 응답자는 511명, 응답률은 5.0%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 비율로,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p이다.
     

  • 15일 오후 6시로 예정된 '광복72주년 광화문광장 시민음악회'. 기자가 찾은 시간은 6시20분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15일 오후 6시로 예정된 '광복72주년 광화문광장 시민음악회'. 기자가 찾은 시간은 6시20분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