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전문가들, "에너지 포퓰리즘 그만... 국민들에게 솔직해야"
  • 7월 31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 7월 31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도,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 발표에 대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기요금 급등이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반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으로 불붙은 탈원전 정책 실효성 논란이 심화되면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반론을 잠재울만한 근거를 내놓지 못한 채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를 열고 “2022년까지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신재생 단가 하락 등으로 요금 인상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5년간은 전력설비에 여유가 있어 전력수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전기요금도 2022년까지 현재와 유사한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22년 이후 원전 설비 감소로 10GW(기가와트)의 설비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부족분은 향후 15년 동안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소 건설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오히려 전기요금이 인하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탈원전을 신재생에너지와 LNG(액화천연가스)가 대체하면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으로 발전단가 하락, 수요자원관리,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적용 등 요금 인하 요인도 크다”고 말했다.

    정부 여당이 적극적으로 불안감 해소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학계와 전문가들의 시각은 정반대였다.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2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현재 원자력발전소만큼 효율적인 대체 발전소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발표대로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도 없을 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예측되는 명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환경단체가 “에너지 전환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정면 반박인 셈이다. 생산단가를 kwh당으로 고려할 때 정부의 ‘전기료 인상 없는 탈원전 구상’도 ‘장밋빛’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원전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요 발전원별 단가는 2015년 기준으로 kWh 당 원자력발전소 68원, 석탄발전소 74원, 천연가스 101원, 신재생 157원 순으로 나타났다. 원전 발전단가가 신재생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성 교수는 또 “원전이 수명이 만료돼 폐쇄되는 시점부터는 발전단가가 높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전기요금에 뚜렷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원전은 2022년 월성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11기의 수명이 만료된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 백지화와 설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이 추세대로 원전이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월성 1호기 △2023년 고리 2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한빛 1호기 △2026년 월성 2호기·한빛 2호기 △2027년 한울 1호기·월성 3호기 △2008년 한울 2호기 △2029년 월성 4호기 등 총 11기가 7년 사이에 수명을 다한다.

     

  • 삼성전자가 30일 '무풍에어컨' 인기에 힘입어 올 1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국내 시장에 가정용 에어컨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 삼성전자가 30일 '무풍에어컨' 인기에 힘입어 올 1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국내 시장에 가정용 에어컨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현재 짓고 있는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 2호기 등이 가동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고 현재 예비전력이 높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 내에서는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7년 쯤이 지나면 이러한 효과도 떨어지고 원전이 폐쇄될 경우에는 눈에 확 들어 올만큼 전기요금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신정부 전원 구성안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이 예상된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이 줄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20%까지 늘린다고 가정했을 때 2029년 발전비용은 지금보다 21% 증가한다. 이 비용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하면, 지난해 가정용 1가구 평균 전기 사용량(385㎾h)에 따른 월 전기요금 6만2,550원이 7만5,060원으로 오른다. 월 1만2,510원이 오르고, 1년으로 환산하면 가구당 15만 원정도 더 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올리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가동률을 60%까지 확대하면 가정용 요금은 현행 원전 정책을 유지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2020년 52원, 2025년 2,312원, 2030년엔 5,164원으로 오른다.

    이종수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속도가 빠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탈원전이 점진적으로 시행될 때는 전기요금이 급격히 올라가지 않겠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전력가격이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전 가동 중단이라는 입장을 떠나서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시장의 원리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실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밝힌 시장의 원리에 따른 탈원전 정책은 세제 개편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원자력발전소 원료에 사회적 비용만큼 세금을 매기게 되면 전력가격이 올라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투자도 줄어들어 원자력 산업이 쇠퇴하게 되고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를 임시 중단하는 인위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른 구상이다.

    원전축소로 인해 전력수급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은 기상환경에 따라 발전량 기복이 심해 전력공급의 안정성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며 “더욱이 우리나라는 높은 토지임대료와 낮은 에너지 효율 때문에 사업성이 높지 않아 신재생 확대가 녹록하지 못한 편”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모범 사례로 꼽고 있는 독일은 원전을 대체할 ‘갈탄’의 생산량이 풍부했기 때문에 탈원전 정책이 가능했다. 독일은 갈탄을 태워 석탄 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 발전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줄여야 하지만 현재 독일의 전력 생산 비중에서 석탄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1.6%에서 2016년 40.3%로 큰 변동이 없다. 석탄을 손이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날씨에 영향을 받는 신재생에너지가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취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단체들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독일이나 해외 사례 등 비춰봤을 때 원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했던 많은 선진국들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졌다”면서 “포퓰리즘처럼 ‘큰 폭으로 가격 변동이 없다’라는 정부의 설명에는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반 가정용은 인상하지 않고 산업용만 인상하겠다는 것도 꼼수에 불과하다”면서 “산업용에서만 인상하게 되면 전체적인 물가가 상승해 결국 국민들에게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인상분이 얼마일지 토론을 거친 후 그 수준에 맞게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현재 신고리 공론화위원회의 3개월 후에 공론조사를 거쳐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건데 독일의 경우에는 20년이 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꼬집었다.

    한편 원전 사고에 트라우마가 깊은 일본마저 최근 아베 총리가 원전 수명을 연장했다. 중국도 10년 내 원전 60기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이익을 위해 원자력을 고도할 것임을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