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세금 충분히 못걷으면 보편적 증세 혹은 국채 발행" 결국 국민 부담
  •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4월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대선후보 청년공약 정책토론회에 앞서 축사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4월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대선후보 청년공약 정책토론회에 앞서 축사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문재인 정부의 증세론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거센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여권발(發) 증세 움직임이 결국 '기업 목조르기'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이 짙다. 청와대로 불려간 대기업 총수들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업을 압박해 곳간을 가득 채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포퓰리즘 증세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다.

    특히 "조세부담률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분석이 많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조세부담률이 높을수록 경제 성장률이 낮아질 수 있다”면서 “구축효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구축효과란 경제학에서 정부 지출 증가 때문에 발생하는 민간 부문의 소비 및 투자 감소를 가리킨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축효과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로 정부가 지출을 늘리려면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그 전에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고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도 감소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적정 조세부담률을 초과했다”면서 “조세부담률이 커질수록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적표가 초라한 이유

    그렇다면 역대 정권별 조세부담률은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2003~2007) 시절 조세부담률은 정권 초기인 2003년 18.2%, 2007년 19.6%로 사상 처음 19%를 넘었다. 이명박 정부(2008~2013) 때는 감세 정책을 펴 3년 연속 하락해 2010년에는 17.9%까지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2013~2017) 집권기에는 조세부담률이 2014년부터 3년 연속 증가해 2016년 19.4%까지 올랐다.

    조세부담률 증가가 경제성장률에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조동근 교수는 "정부의 규모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학의 오랜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지만, 조세부담률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는 개인이 정부보다 마지막 1원을 더 합목적적(合目的的)으로 지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조세부담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해 봤을 때, 세율이 높았던 노무현 정부(2003~2007년) 5년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4.48%로 세계경제성장률 평균치(4.78%)를 밑돌았다.

    "참여정부의 대외 경제환경은 최상이었다. 별다른 국제적 경제위기가 없었고,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함에 따라 한국은 거대한 수출시장을 지근거리에 둔 셈이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경제성적은 초라했다." (조동근 교수)

    증세 드라이브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감세 정책으로 2010년 조세부담률을 17.9%까지 떨어뜨린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3.2%로 세계평균성장률(2.88%)를 웃도는 성과를 올렸다. 글로벌 위기라는 초유의 악재 속에서도 세계 평균 경제성적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 세계평균 경제성장률 대비 경제성장률 비교 ⓒ바른사회시민회의.
    ▲ 세계평균 경제성장률 대비 경제성장률 비교 ⓒ바른사회시민회의.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들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반면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5년 간 추진할 경제 패러다임으로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제시했다. ‘핀셋 증세’를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조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세금(3조8,000억원)은 이번에 통과된 11조원 추경의 30%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를 모두 실현하려면 178조원이 필요하지만 한참 모자란 셈이다. 광범위한 증세를 하거나 국채발행 등 수단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조동근 교수는 "충분히 세금을 걷지 못하면 또 다른 증세를 해야 한다"며 "지출이 요구될 때마다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핀셋증세는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조어(造語)에 불과하며 이것으로 현실을 가릴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보편적 증세에 손을 대거나 국가 부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다. 만약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하면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의무적 지출’ 비중이 증가하고 재정운영의 경직성이 높아지게 된다.

    민경국 교수는 “정부가 지출을 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는 말은 자본시장에 채권을 팔아서 그 돈으로 정부가 사용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그러면 지금 정부가 시중에 있는 돈을 가져가게 되면 시장에서 금리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기업이 은행에 돈을 빌려 투자할 여건이 나빠지게 된다는 의미로 정부의 지출이 마중물이라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경고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슈퍼리치가 1인당 부담하는 세금은 높더라도 전체 국민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작기 때문에 2~3조가 세금으로 더 걷힐 것으로 본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를 활성화를 시켜 자연스럽게 세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턱 없이 모자라고 보편적 증세와 국채 발행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 文 정권이 요구하는 178조원, 기업 다음 차례는?

    보편적 증세의 경우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는 계층별 갈등이, 경제적으로는 효율비용(초과부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초과부담이란 경제주체가 세율이 증가함에 따라 자신의 선택 패턴을 변화시키게 되고 결국 의사결정에서 왜곡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영국 정부가 창문 개수에 따라 부동산에 세금을 부과하자 건물 주인들이 창문을 막아 집안이 어두워지는 예상치 못한 현상이 초래된 것도 ‘초과부담’의 대표적 사례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적 능력이 천차만별이더라도 사람의 본능에는 세율이 올라가면 반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조세저항 형태로 나타난다”며 “오히려 세율이 올라갈수록 지하경제를 확대되고 이에 따라 세금이 덜 걷히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동근 교수도 “세율이 증가하면 경제주체는 조세부담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 같은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왜곡된다”면서 “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세금이 더 걷히면, 즉 자연적 세수 증가가 이뤄지면 효율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증세가 아닌 ‘증수(增收)’가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제언했다.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혁파하는 등 기업 환경을 개선시켜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이 더 걷히는 ‘증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경제성장률과 조세부담률의 관계.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경제성장률과 조세부담률의 관계.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