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거수기·통법부로 전락… 정우택 "토요일의 정략적 야합, 정상 아냐"
  • 국회는 토요일인 22일 오전 본회의를 소집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는 국회 본회의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 국회는 토요일인 22일 오전 본회의를 소집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는 국회 본회의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토요일 대낮에 국회에서 전격 통과됐다. 추경안이 제출된지 45일 만의 일이다.

    이번 주말 안으로 어떻게든 추경안을 통과시키라는 청와대의 국회를 향한 압박이 관철된 결과로 해석된다. 삼권분립 하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고려해볼 때, 좋지 않은 헌정의 선례를 남겼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조3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이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전날 예결위 소위와 전체회의에서 통과된데 이어 마치 시한이라도 정해놓은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국민의당·바른정당 원내지도부와 협의를 갖고 국가공무원의 증원을 소폭 조정하고, 관련 교육 명목으로 잡혀있던 예산 일부를 삭감하되 이는 목적예비비에서 전용하는 방안으로 추경안 관련 합의를 이뤘다.

    이후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 강행처리 의사를 표명했다. 예산안은 법안과는 달리 개정국회법(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되지 않아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이 연대하면 본회의 의결이 가능하다.

    이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찬성이든 반대든 4당이 참여해 예산이 통과돼야 하지 않겠느냐"며 "오늘(21일)은 예결위에서 결말만 짓고, 월요일 오전에 본회의를 열어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 간의 합의에 기초한 사안을 하루 안에 예결위 소위~예결위 전체회의~본회의까지 열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것은 '날치기'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헌법기관이므로 이 '합의안'이 한국당 의원단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이상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를 받아들이는 듯 했다가, 만찬을 하고 온 뒤 30분 만에 입장을 바꿔 본회의 강행을 고집했다.

    30분 만에 바뀐 우원식 원내대표의 표변에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금 (본회의를) 통보해도 수도권 (지역구의) 몇 사람밖에 오지 못한다"며 "왜 강요를 하느냐. 예결위에서 통과된 것을 월요일에 찬성이든 반대든 (표결 참석을) 보증해주겠다는데…"라고 황당해했다.

    결국 이 '30분' 사이에 누구로부터 어떠한 물밑접촉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월요일로 넘어가면 파악된 여당 의원들의 외유 일정상 본회의 통과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니, 반드시 오늘 통과시키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와 관련해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추경안 통과를) 원하는데 여당 의원이 외국에 나가려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게 이유라면 (여당)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공박했다.

    결국 하루 만에 본회의까지 열어 '벼락치기' 식으로 추경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관계로 실패로 돌아갔다. 날짜를 넘겨 이날 새벽에 예결위 소위와 전체회의에서 추경안을 처리하는데 그쳤다.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1일 심야, 국회의장실에서 모여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21일 심야, 국회의장실에서 모여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헌정 상의 이상징후는 이어졌다. 관례에 맞지 않게 토요일 오전부터 본회의 소집이 시도됐다.

    그런데 정작 '강행처리'파가 모이고보니,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과 사실상의 바른정당 소속인 한국당 김현아 의원까지 합쳐도 의사정족수 150명에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로 현재 국회의원 재적은 299명, 의사정족수는 그 과반인 150명인데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의원 등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국회의원까지 빠짐없이 참석시켰는데도 모인 의원은 145명에 불과했다.

    한국당이 별도 회의장에서 본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토론하고 있는 동안, 의총에 불참한 장제원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복당한 장제원 의원은 최근 한국당 혁신위원회가 탄핵찬성파 의원의 문책을 운운하는 모습을 향해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는 만큼 '항명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장제원 의원은 자리에만 착석했을 뿐 '재석'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이에 몸이 달은 일부 친문(친문재인) 성향 의원들은 장제원 의원을 둘러싸고 서서 "재석 버튼을 누르라"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제원 의원을 차치하고서라도 정오 무렵에는 149명의 의원들이 모여들어 의사정족수에는 불과 1명이 미달이었다. 자정까지 기다리면 언젠가 정족수가 달성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긴급 의원총회에서 "토요일에 비정상적이고 정략적인 야합으로 추경이 통과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가 참여하지 않아도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서 반대토론으로 끝까지 세금으로 공무원 증원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우리의 뜻을 초지일관으로 밝히자"며 "추경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때, 우리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정리했다.

    결국 한국당 의원들의 본회의 참석으로 추경안은 재석 179인 중 찬성 140인, 반대 31인, 기권 8인으로 통과됐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음 주에는 여당 의원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니, 이번 주내로 어떻게든 (추경안을) 처리하라는 BH(청와대)의 특명이 내려왔다더라"며 "국회가 통법부·거수기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반면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국회 본회의에서의 추경안 통과 직후 "일자리를 늘려 국민의 삶을 해결하고자 했던 추경안이 더 늦기 전에 통과된 것을 다행스럽게 평가한다"며 "추경안을 제출하면서 국민에게 약속드린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을 개선하며, 소득격차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