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샤오보의 他界를 애도하며 '중국 바로보기'를

     중국은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1당 독재 국가다.
    공산당 이외의 정치결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들은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한계 안에서 놀게 둔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래서 중국의 어떤 체제내(內) 학자나 오피니언 리더가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노선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할 때
    그것을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별 의미가 없다는 게 필자의 시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런 이견(異見)들은 일종의 면허증 가진 사람들의 ‘가두리 안 특례' 같은 것일 뿐, 자유세계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이견은 어제 숨진 류샤오보 같은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들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고,
    체제 내 저명 학자나 관변인사들이 던지는 ’다른 의견‘은 공산당의 통제와 조정(調整) 하에서
    행해지는 ’내부토론의 한 포말(泡沫)‘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난징대학 교수 주펑(Zhu Feng)이 미국 계간지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기고한 글(북한에 대한 중국의 책임-워싱턴은 어떻게 베이징이 평양의 고삐를 죄게(rein) 할 것인가?)에서 “중국의 장기적 이익과 국제사회의 이익을 합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을 선택하는 것 뿐”이라고 주장한 것은 현재로서는 하나의 비주류적인 개인의견으로 띄우는 것이 인가(認可)된 사례일 뿐, 그것이 중국 공산당의 주류담론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주펑 교수의 주장 자체는 물론 옳다. 중국이 비록 공산당 국가라고는 하지만 시장경제를 활용할 줄 아는 실용주의 노선의 강대국인 한에는 한반도의 유의미한 문명국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판단쯤은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할 것이고, 중국 지도부가 정상적인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정상적인 인간들이라면 문명국과 야만국 중 어느 편과 친해야 할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일이라 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완충지대이자 서구적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역(防役) 지대로서 북한의 존속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북한이 아무리 악마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그 서방동맹국이 압록강 건너편에 나타나는 악몽보다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이건 시진핑 유(類)의 ‘공산주의적 중화제국주의’ 보수파의 전형적인 이데올리기이자 안보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펑 같은 소수파의 희망론 같은 것에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다만 주펑 같은 이견은, 현재의 중화제국주의 권력자들의 도덕적 결함이 그들 진영 내부의
    다른 견해에 의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란 정도의 의미는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같은 반(反)인륜 범죄자를 비호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부도덕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자초하고 있다.
    강대국일록 그 힘에 해당하는 만큼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강대국의 패권을 추구하다라도 정당성의 명분을 갖춰야 한다.
    제아무리 국가이익이라 하더라도 김정은 같은 악마를 비호하고 편들어 준다는 것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결코 장기적인 이익이 될 수 없다.
     
     오늘의 공산당 중화제국에 필요한 것은 문명성이다.
    공산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돼 있는 패권국가에 문명성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지 몰라도,
    중국은 그래도 2천 년 전에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배출한 문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을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여지없이 말살하려 했지만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은 그 야만적인 광풍을 씻어내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후진타오-시진핑의 공산 중화주의는 왕년의 중원 패권주의를 부활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시진핑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가 자기네 일부였다고 말한 것부터가 중국의 그런 오만과 무례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의 신판 존명사대(尊明事大)의 친중파다.
  • 이들은 왕년의 위정척사(爲正斥 邪) 파처럼 서구가 선도한 근대문명을 배척하고 중국을 사모하며 반(反)서구주의의 쇼비니즘에 갇혀 그것이 마치 ‘자주’이고 ‘민족적’이라는 양 억지를 부린다.
    오늘의 반미-친중(反美-親中)론자들은 일종의 현대판 존명사대 파인 셈이다.
    이들은 그러나 중화패권주의가 지난 수 천 년 동안 한반도에 대해
    얼마나 큰 재앙의 원천이었는지를 알지 못하거나 모른 체 한다.

 중국은 한반도엔 침략과 약탈의 원흉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그들은 왜군 못지않게 횡포를 부렸고, 전쟁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일각에선 한반도를 일본과 분할지배 하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일제 36년’에 대해서만 절치부심할 게 아니라,
중원제국주의의 횡포 2천 년에 대해서도 한반도인(人)들은 똑같은 한(恨)을 품어 마땅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더도 덜도 아니게 스트레스 주는 이웃으로 있었다.
이 둘의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선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동맹을 맺고 가까운 나라와 겨룬다)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먼 나라가 다름 아닌 태평양 넘어 있는 자유-민주 국가 미국일 수 있다. 미국은 영토적 야심이 없고, 우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다.
한-미 동맹이 있는 한 중국도 일본도 우리를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 한-미 동맹을 ‘노예계약’이라고까지 비방하는 극렬한 현상이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한-미 동맹을 벗어나 중국과 살자는 주장도 있다.
중국 외교관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국내 정당정치의 틈바구니에 쐐기를 박으려는 현상
하나만 보아도 중국이란 나라가 한반도를 자기들 무엇쯤으로 여기는지 생생히 드러난다.
이런 중국과 왕년의 조공질서를 다시 복원하자고?
한국 정치인들은 이제 제정신 차려야 한다.
중국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과 기대에서 깨어나야 한다.
중국은 전체주의 1당 독재 국가다.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박약한 체제라는 뜻이다.
티베트인들의 민족적 자존에 대해 중화제국주의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가?

 중국 인권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고(故) 류샤오보의 명복을 빌며,
한국 조야(朝野)의 대중(對中) 인식의 명료화를 촉구해 마지않는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7/14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