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박근혜-이재용 독대’ 바탕으로 뇌물죄 구성...공소사실 입증 차질
  • ▲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 사진 뉴시스
    ▲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 사진 뉴시스

    변호인단 :
    대통령으로부터 합병 관련 지시를 받았거나 회의 때 언급했다면 수첩에 ‘합병’이란 단어가 최소한 1번은 있었겠죠?

    안종범 :
    만약 지시를 했다면 적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수첩에는 없었습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1박2일 증인신문’이 5일 밤 마무리됐다.

    사안이 중요하고 신문사항이 많은 경우, 해당 증인에 대한 신문을 두 차례 나눠 진행하는 예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증인을 이틀 연속 불러 신문을 이어나간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안종범 전 수석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당사자이자,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의 주요 증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가 이 부회장 사건 증인으로 채택될 때부터 언론은 그의 입에 주목했다.

    4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한 그였기 때문에, 그의 진술은 이재용 부회장 사건은 물론 동시에 진행 중인 박근혜-최서원(최순실)-신동빈 공판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특히 특검이 압수한 ‘안종범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에서 나눈 대화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안 전 수석 증인신문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1박2일 증인신문’의 결과, 안종범 수첩은 베일의 상당부분을 벗었다. 심리를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안종범 수첩’의 내용은 크게 ▲박 전 대통령이 한 말 ▲안 전 수석 자신이, 경제인회의 등에 참석해 청취한 발언으로 나눌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은 다시 현안에 대한 ‘지시’와 ‘알아두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을, 안 전 수석이 받아 적은 ‘참고용 말씀’으로 구분된다. 前者는 안 전 수석이 비서관회의 등을 통해 하달했으며, 3~4개월에 한 번 꼴로 지시사항 처리결과를 정리해, 대통령에게 별도로 보고를 했다.

    지시가 아닌 참고용 말씀의 경우는 ‘그냥 적기만 했을 뿐’ 작성 후 한 번도 다시 보지 않아,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 전 수석의 답변이다.

    지시와 참고용 말씀을 구분하는 방법은 별도로 없지만, 지시의 경우는 작성 당시, ‘대책 강구’ 등의 표현을 넣었다고 안 전 수석은 설명했다.

    안 전 수석은 ‘핵심 단어’ 몇 개를 적는 형태로 수첩을 작성해, 대통령의 ‘지시’가 아닌 경우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기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틀 동안의 증인신문을 통해 확인된 주요 사실은 다음의 네 가지다.

    첫 번째, 안 전 수석은 3차례에 걸친 ‘박근혜-이재용 독대’에 단 한 번도 배석한 사실이 없다.

    두 번째, 안 전 수석이 직접 작성한 수첩에는 특검 공소사실의 핵심을 이루는 ‘삼성 합병’이나 ‘순환출자 해소’, ‘삼성 혹은 이재용 승계’와 같은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세 번째, 박 전 대통령은 재계가 요구한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주장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은 자유로운 M&A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해선 안 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네 번째, 박 전 대통령이 미르재단 설립 의사를 밝힌 시점은 2015년 1월19일 쯤이며,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구상은 각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설립·운용하고 있는 문화재단을 한데 모아 ‘공동 문화재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해당 사안과 관련해 안종범 수첩에는 ‘5.문화재단, 대기업별 문화재단 갹출→공동 문화재단’이라고 기재돼 있다.

    안 전 수석은 위 기재내용이 뜻하는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

    “구체적으로 문화재단이나 체육제단을 만든다는 게 아니었고, 기업별로 따로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국익이나 공익을 위해 공동으로 문화재단을 만들면, 기업이 한류를 통해 세계로 진출하는데 도움도 되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신 거 같다.”

    안 전 수석은, 재단 설립 실무를 담당한 전경련의 과오로, 기업들이 재단 설립 기금출연을 청와대의 ‘강요’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변호인단 :
    증인은, 전경련이 ‘BH 요청’이라는 걸 강조하는 바람에, 기업들로 하여금, 청와대가 재단 출연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잘못을 범했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안종범 전 수석 :
    네. 맞습니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이들 사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특검이 조사 과정에서 자신을 회유·협박한 사실도 있다고 털어놨다.

    안 전 수석은 ‘삼성 합병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을, 특검이 압박했는지’를 묻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특검이 ‘협조하면 기소하지 않겠다’, ‘가족 문제를 파헤치겠다’는 말도 한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

    증인신문과 안종범 수첩에 대한 조사를 통해, 에티오피아 순방을 앞둔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수주를 도와주라”는 지시를 한 정황도 확인됐다. 다만 안 전 수석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건 맞지만, 삼성은 이미 진출을 해서 사업을 잘 하고 있어 도와줄 게 없고, 대기업 위주로 수주를 지원하면 곤란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진술했다.

    안 전 수석은, 그 뒤로도 (박상진 사장 지원을 위한) 후속조치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변호인단과 안 전 수석 사이 신문사항 정리.

    변호인단 :
    (증인 수첩 16년 5월22일 VIP부분을 제시하며)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수주 도와줄 것’ 이라고 돼 있다. 이 기록에 대해 증인은 ‘박상진 사장이 에티오피아에서 수주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취지였다’고 했죠?

    안종범 :
    맞습니다.

    변호인단 :
    박상진 사장은 수주관련 업무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나요?

    안종범 :
    모릅니다.

    변호인단 :
    이 말의 뜻 기억합니까?

    안종범 :
    ‘수주 도와줄 것’이라고 말씀 하셨고, 박상진에게 수주를 포함해 도와줄게 없느냐 물어보라고 해서, 삼성의 경우 이미 진출해 성공하고 있었고, 대기업 수주를 도와줄 수는 없다는 말씀을 통에게 드렸습니다.

    변호인단 :
    후속조치 한 기억이 없다는 거죠?

    안종범 :
    네.

    박 전 대통령의 경제 현안 관련 지시사항을 모두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안종범 수첩’에, 삼성 합병이나 순환출자고리 해소,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등 특검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할만한 어떤 단어나 표현도 쓰인 사실이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적어도 ‘안종범 수첩’의 내용만 가지고, 특검이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안종범 수첩과 안 전 수석의 진술을 통해, ‘박근혜-이재용 독대’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있었음을 입증하겠다는 특검의 전략도, 무산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안 전 수석은 삼성물산 합병 등 현안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재용 공판] ‘1박2일’ 안종범 전 수석 증인신문 중요사항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