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 “뙈기밭에 묘목 심고 그 사이에 농사 지으라” 지시 안 따른 때문
  • 사실상 북한 주민들의 생계 원천인 뙈기밭의 풍경. 최근 북한 김정은 집단은 산림복원을 핑계로 주민들로부터 뙈기밭을 몰수하고 있다고 한다. ⓒ김성일 서울대 교수 제공-뉴데일리 DB.
    ▲ 사실상 북한 주민들의 생계 원천인 뙈기밭의 풍경. 최근 북한 김정은 집단은 산림복원을 핑계로 주민들로부터 뙈기밭을 몰수하고 있다고 한다. ⓒ김성일 서울대 교수 제공-뉴데일리 DB.


    1990년대 후반 배급체계가 무너진 뒤 북한 주민들은 집 주변이나 야산에 ‘뙈기밭(텃밭)’을 일궈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해왔다. 2000년대 들어 장마당이 늘어나자 ‘뙈기밭’에서 키운 채소 등을 내다 팔아 생활에 보태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뙈기밭’을 강제로 몰수당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2일 북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말부터 주민들이 산등성이 등에 일궈놓은 뙈기밭을 몰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분은 ‘임농복합경영’으로 훼손된 산림을 복원해 인민들의 공동재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접촉한 함경북도 소식통은 “함경북도 산림경영위원회와 국토환경보호국에서 주민들의 개인 뙈기밭을 몰수하고 있다”면서 “우선 경사각 30도 이상의 산비탈과 산등성이에 있는 뙈기밭을 몰수해 인근의 원료기지 사업소에 넘겨주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2017년은 경사각 30도 이상인 곳의 뙈기밭을 몰수하지만, 2018년부터는 경사각 15도 이상인 곳의 뙈기밭까지 몰수할 것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산지가 많은 북한에서 경사각 15도 이상인 곳의 논밭을 몰수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가진 뙈기밭의 거의 대부분을 당국에서 몰수해가는 꼴이 된다.

    소식통은 “당국은 지난 5월 중순경 인민반 회의를 통해 ‘세대 당 100평 이상의 뙈기밭을 소유할 수 없다’는 내용의 노동당 중앙 방침을 전달했다”면서 “하지만 주민들은 예상 못했던 일이라 속수무책으로 뙈기밭을 몰수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접촉한 양강도 소식통은 “도시 외곽에 살면서 뙈기밭 농사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밭 몰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라며 “차라리 이른 봄에 몰수했으면 주민들이 힘들게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밭갈이와 파종까지 끝난 이제야 몰수를 하니 주민들의 분노가 더 큰 것 같다”고 밝혔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봄부터 뙈기밭에 거름을 만들어 뿌리고, 씨를 구해 심느라 상당한 비용을 들였음에도 당국이 아무 보상 없이 밭을 빼앗아가는 데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생활 수단 몰수는 장마당 거래에도 악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북한 내부 불만을 증폭시킬 가능성에 높은 데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뙈기밭을 빼앗는 이유는 ‘산림 복원’ 문제 때문이라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산림 복원을 명분으로 주민들에게 “뙈기밭 자리에 나무를 먼저 심고 그 사이에 농사를 지으라”고 명령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지시를 따르기는커녕 당국에서 심어놓은 묘목까지 고의로 훼손하자 ‘뙈기밭 몰수’를 지시했다고 한다.

    당국과 주민들 간의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는 절차나 기구가 없는 북한이다 보니 양측의 갈등은 점차 감정 대립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뙈기밭을 당국에 몰수당한 주민들은 오히려 앙갚음을 한다며 밤에 몰라 산에 올라가 자신들이 심었던 곡식을 마구 뽑아버리고 있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 소식통은 “혜산시 검산동에서만 카라비료 공장 소성로 작업반장 등 11명의 뙈기밭 주인들이 밭을 훼손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2000년 이후 북한의 경제가 ‘장마당’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배경에는 뙈기밭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김정은 집단의 이번 ‘주민 뙈기밭 몰수’ 정책은 향후 북한 내부체제 결속을 약화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