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안철수-유승민 3자토론회로 여론조사...안철수-유승민 거부하면? 그때는...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런 칼럼을 썼다.

    “보수 진영에서는 박 의원에게 정권 재창출의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로 집권하면 속 터질 국민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찍은 사람들조차 돌아서고, 반대해온 사람들은 아예 벽을 쌓을 것이다. 생각 있는 보수 쪽 사람들은 ‘박근혜가 안 돼도 걱정이지만 돼도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보수 진영이 ‘박근혜’라는 한 후보를 놓고 심란했다. 결국 다들 찍었다.

    지금은 훨씬 다른 차원의 혼란스러운 고민에 빠져 있다.

    보수 성향 사람들끼리 모였다 하면 서로에게 꼭 건네는 질문은 이렇다.

    “누굴 찍어야 하느냐. 우리 표(票)는 누구에게로 가야 하나. 시원하게 답 좀 해달라.”

    구체적으로 “홍준표냐? 안철수냐?”라고 묻고 있다.

    선거 막판에 몰린 보수 성향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되는 한쪽으로 표를 모아야 한다’고 여긴다.

    문제는 그래야 한다는 것만 알 뿐 안타깝게도 방법은 모른다.

    심지어 ‘누가 나서서 이 후보들을 안 합쳐주나’라는 헛된 바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무수히 돌아다니는 세간의 말들은 정작 후보에게는 크게 안 들리는 모양이다.

    후보들은 서로 대놓고 “단일화는 없다”고 공언해왔다.

    “그 질문에 백 번 이상 똑같은 답을 했다”는 후보도 있다.

    이대로 가면 그 누구도 문재인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선거에서 이기면 좋지만 질 수도 있다.

    가치와 명분을 지키는 패자(敗者)도 의미가 있다.

    그러니 안 하겠다는 후보들에게 연대나 단일화를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후보들은 보수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있다고 본다.

    현실에서 보수 유권자는 안철수와 홍준표 중 자신의 선택이 전체 보수표를 양분(兩分)시킬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문재인을 더 유리하게 만드는 결과다.

    이럴 거면 투표를 해야 하는지 회의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가 자신의 원칙과 명분만 내세우고 유권자들이 알아서 택하라는 것은 공급자 중심 발상이다. ‘정치는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봉사’라며 여태껏 입에 달고 살아온 게 무색해진다.

    후보끼리 연대를 못 하겠다면, 보수 유권자의 선택을 좀 편하게 해주는 서비스는 제공해야 한다. 유권자가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다 투표권을 포기하는 마음이 들도록 해선 안 된다.

    비록 패배해도 보수 유권자가 ‘우리도 해볼 수 있을 만큼 했다’며 미련이 덜 남도록 해줄 책임이 후보에게 있는 것이다.

    선거가 열흘 남았다.

    지금에서는 보수 유권자의 고민을 풀어줄 현실적인 카드는 딱 하나밖에 없다.

    홍준표·안철수·유승민 세 후보끼리 토론회를 갖고, 그 뒤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맡겨 보수 유권자를 대상으로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겠느냐(혹은 대통령 후보로 적합한가)’를 조사하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비슷한 선례는 있었다. 당시 선거를 한 달 앞두고 1강(이회창)과 2중(노무현·정몽준)의 구도로 가고 있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에서 ‘방송토론회+여론조사’가 합의됐다.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이 정몽준보다 상당히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내가 져도 좋다. 이회창 후보한테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라며 여론조사 방식을 받은 것이다. 단일화 방안이 타결된 그날 밤 ‘후보 단일화 토론회’가 열렸고 이틀 뒤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당시는 선거 기간 전(前)에 합의돼 양자 방송 토론회가 가능했다. 지금은 선거 기간 중이다.

    방송 토론회에는 후보 다섯 명이 모두 초청돼야 한다. 이 3명만 따로 하는 것은 법 위반이다.

    하지만 선거법의 허용 범위에서 가능한 방법이 있다.

    해당 정당들이 청중 없이 3명의 후보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당의 유튜브 계정으로 인터넷 생중계를 할 수 있다. 시청자를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후보의 인터넷 광고에 첨부된 ‘토론회 개최’ 홈페이지를 누르면 정당 사이트에 연결할 수 있다.

    토론회 뒤 여론조사 결과는 1위만 발표한다.

    보수 유권자에게 ‘누구에게로 가야 표가 모이는지’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보수 유권자의 당면한 고민을 풀어주는 고객 서비스다.

    후보들이 그렇게 안 하겠다고 공언해온 ‘인위적 단일화’와는 다르다.

    여론조사에서 2·3위 후보가 중도 사퇴를 하든 완주를 하든 그건 자신의 자유다.

    이런 방식조차 안철수가 못 받아들이면, 홍준표와 유승민 둘이서 하면 된다.

    그럴 경우 보수표는 확실하게 안철수에게서 ‘철수’할지 모른다.

    유승민이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과의 거리가 감정적으로 더 멀어졌을 거다.

    하지만 이는 자기들끼리 해결할 문제다.

    자신의 선택이 가장 원치 않는 후보의 당선을 돕게 될지 모르는 역설(逆說)의 상황에 놓인 보수 유권자의 고민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후보들이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유권자의 이런 심정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다.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 최보식 / 조선일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