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TV 토론 이후의 자유민주 우파의 선택은?

    제3차 대통령 후보 TV 토론을 보았다.
    후보들이 한 말 일일이 다 열거할 생각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눈여겨 본 것은 이번 대선 판 역시 5자~15인이 출마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두 흐름 사이의 싸움이란 사실이다.
    홍준표-유승민이 크게는 한 흐름, 문재인-심상정이 또 한 흐름이란 것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정쟁적으로는 홍준표와 유승민은 서로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그건 거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아니 거의 무의미했다.

    문재인과 심상정은 우파 후보를 상대로 한 이념적 대결에선 한 배를 탄 4촌처럼 보였다.

    이 두 흐름 사이의 싸움은 8. 15 해방공간 이래 오늘 이 시점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정치사와 정치사상사의 숙명적인 싸움이라 할 만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싸움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고, 열외임을 자처할 수 없다.
    그 만큼 이 싸움은 한반도적 삶 100년사(史)에 씐 업(業, Karma) 같은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숙명에 비추어 본다면 안철수 후보의 제3의 자세는 어딘가 다분히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설정처럼 느껴졌다.
    그는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심상정 후보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 점은 필자도 마찬가지로 느껴왔다.

    왔다 갔다 이전에, 정체성의 완결성이 미처 이루어진 것 같지가 않다.

    필자는 이점을 4월 18일자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에서 안철수 제3의 길은 '다 지은 집'이 아니라 '짓고 있는 집'이라고 표현 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가 이미 코앞에 다가온 이 마당에 언제 그 집이 다 지어진다는 것인가?

     조선일보-칸타퍼블이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37.5% 안철수 26.4%로, 양자 간 격차가 11.1% 포인트로 벌어졌다.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란 설정은 사실상 붕괴하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잘 하면 내가 당선되니 3등 이하는 그리 알라”고 호언하기가 이제는 썩 쉽지가 않게 됐다.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한 때 일부 보수층과 안희정 지지표가 옮겨가 수직상승한 바 있으나, 지금은 그 표가 서서히 도로 빠지고 있다.
    보수-진보 이념 싸움을 낡은 것으로 치고, 그래서 이제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하는 안철수 후보의 ‘썰’에 대해 그 쪽으로 갔던 보수표와 진보표가 다같이 공허함을 느낀 때문은 아닐런지?

    이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후보는 3차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의 자유한국당을 ‘후보를 낼 자격조차 없는 존재’ 정도로 내리깎았고, 유승민 후보에 대해서도 일체 아쉬운 소리(연대론 등)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의 그의 줄어들고 있는 득점수에 비해 보수 양당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을 보이는 듯 했다.
    이게 과연 충분히 정치적이고 대국적일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는 문재인 후보와 막상막하의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라, 오차범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궁색한 처지에서 그가 과연 보수 양당을 향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 같은 고자세를 취하는 게 정말 적절한지 돌아 볼 일이다.

    안철수 후보 자리에 만약 노련한 정치인이 앉아 있었다면, 그는 솔선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및 보수 시민사회를 향해 “공동의 상대방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통합정권을 만드는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게 통 큰 리더십, 즉 다수파 형성 내지는 연립 형성(coalition building)이란 것이다.
    이걸 잘하는 정치인이 진짜 유능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는 고사하고
    3차 토론에서 오히려 보수진영의 값을 ‘쳐주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일부에선 ‘최악’을 피하기 위해선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그러나 그 ‘차악’이 보수를 향해 아쉽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정당 차원에선 연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다만, 유권자 차원에선 나한테 올 테면 오라는 식이니, 이건 너무 교만하지 않은가?
    교만해도 좋을 상황에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안철수 지지율은 문재인 지지율에 비해 11% 씩이나 뒤처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유민주 우파 유권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부가 안철수 후보 쪽으로 가려 했지만, 그것도 안철수 후보 자신의 비(非)적극성으로 인해 시들해졌다.
    그렇다면 홍준표 후보는 충분히 확립돼 있는가? 
    아...정말 죽을 지경이구나!
    여하튼 5월 초까지 돌아가는 꼴, 후보들 각자가 노는 꼴을
    더 두고 보면서 최종적인 마음의 행로를 정해야 하겠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cisic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