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후보, 빈소 방문 전 광화문 일대 돌면서 악수 청해...휴대폰 촬영 모델도
  • 유세 중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유세 중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16일 낮 경기 양평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 유세홍보차량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진 사건이 정치권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황망하게 남편과 자식과 형제를 잃은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며 민주당의 성의 없는 ‘뒷북 조문’을 거부하는 등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사고 이후 31시간이 지난 뒤에야 희생자를 조문한 사실도 논란을 빚고 있다. 과연 그 동안 무슨 급한 사정이 있었기에, 조문을 가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느냐는 것이 비판의 주요 내용이다.

    민주당 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문 후보가 사고사실을 안 시점은 17일 오전이다. 문 후보는 이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페이스북에 댓글을 올려, 사고 내용을 언급하고 조의를 표했다.

    문 후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조의를 밝히기 전, 이미 이 사건은 온라인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숨진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가족이, 조문은커녕 사고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 민주당의 태도를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이 사고를 ‘세월호 참사’에 비유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숨진 이의 삼촌으로 알려진 누리꾼은 민주당 홍보물을 싣고 이동 중이던 사고차량 운전자가, 사고 발생 직후 119에 신고를 하기 전 누군가와 통화를 한 사실을 밝히면서, 분노를 나타냈다. 이 누리꾼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부절적한 행위를 했다며 분노한 정당에서 어느 한 사람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며, “이 사고가 문 후보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누리꾼은 숨진 조씨(36)를 “꽃잎 떨어지듯 사라진 큰 조카는 우리가 세월호와 함께 숨진 학생들을 안타까워하듯 아름다운 아내를 남겨둔 젊은 가장이었다”며 그를 추모했다.

    누리꾼은 “세월호 선장이 죽어가는 승객들을 내 팽개치고 제 자신의 목숨만을 위해 도망친 것 같이, ‘대통령 선거 캠프’ 화물 트럭 운전자는 죽어가는 제 조카를 길바닥에 내버려둔 채 엠브런스를 부르기 보다는 그 시간에 다른 곳과 통화하고 있었다”고 했다.

  • 숨진 조씨의 유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조선닷컴 화면 캡처
    ▲ 숨진 조씨의 유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조선닷컴 화면 캡처


    실제 사고소식을 119에 신고한 사람은 사고 운전자가 아니라 인근을 지나던 다른 운전자였다고 한다. 숨진 이의 유족들은 사고 운전자의 초동대처가 신속했다면,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 반응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자 민주당 지도부는 17일 오후가 돼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안규백 당 선대위 총부본부장을 보내 공식 조문에 나섰다.

    민주당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유족이 때늦은 조문을 반길 리 없었다. 유족은 안 본부장의 조문을 거부했다.

    이후 민주당 선대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 선대위 윤관석 공보단장은 브리핑을 통해 다시 한 번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면서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은 문재인 후보가 고인에게 조의를 표할 것을 당부했다”고 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당 차원에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누리꾼들의 분노와 부정적 반응이 줄어들지 않자 마지막으로 문 후보가 직접 나섰다. 문 후보는 17일 저녁 제주도로 내려가려던 일정을 전격 변경해 희생자의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만났다. 문 후보는 빈소에 약 40분간 머무르면서 희생자의 부친에게 고개를 숙였다.

    희생자의 누나를 비롯한 일부 유족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문 후보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등 한때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문 후보의 조문은 비교적 순조롭게 끝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문 후보는 조문을 끝낸 직후 제주대로 내려가 예정된 유세일정을 소화했다.

    뒤늦게나마 문재인 후보가 빈소를 직접 찾아 희생자의 부친에게 고개를 숙인 것은 잘한 일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이 먼저’를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그의 평소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의 빈소방문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여기서 한 가지 못내 아쉬운 것은 그가 빈소를 방문하기 전까지의 행적이다.

    17일 저녁 기자는 후배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북창동 먹자골목 안에 있는 식당에 있었다. 문재인 후보가 수행원과 식당 안에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저녁 6시30분이 조금 넘은 때였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문 후보는 테이블을 차례로 돌면서 악수를 청했다. 문 후보는 기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악수 좀 하시죠”.

    기자 역시 다른 손님들처럼 엉거주춤 일어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식당 안은 유력 대선 후보의 등장으로 어수선해졌다. 문 후보와 휴대폰 인증샷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을 벌이기까지 했고, 문 후보는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과 인증샷을 찍으려는 유권자들의 청을 모두 들어줬다.

    문 후보가 숨진 조씨의 빈소를 찾았다는 소식은 그로부터 약 2시간 쯤 지난 뒤 전해졌다. 문 후보가 빈소를 찾기 직전 그와 악수를 한 기자의 머릿속에는 ‘아쉽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얼굴 가득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지지자들의 인증샷 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하고 있는 동안, 서른여섯 짧은 생을 접고 아름다운 아내를 남겨놓고 떠난 희생자의 유족은 분노와 원망과 절망으로 가득 찬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문 후보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던 날, 진도 팽목항을 찾아 숨진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거듭 생명의 고귀함을 강조했다.

    그런 문 후보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번 ‘뒷북 조문’은 아쉬움을 짙게 남긴다.

    그는 자신의 홍보물을 싣고 운전 중이던 차량이 사고를 일으켜, 30대 젊은 가장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가야만 했다.

    북창동 일대 술집과 식당을 돌면서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휴대폰 촬영 모델이 돼 주는 유세활동을 하기에 앞서, 먼저 빈소에서 고개를 숙였어야만 했다.

    민주당 선대위의 대응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문 후보가 식당가를 돌면서 유세활동을 벌이는 동안, 숨진 조씨의 유족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누리꾼들이 비난의 댓글을 올리고 있다는 언론사 기사의 수정을 기자들에게 요구했다. 이런 모습에서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후보의 지론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면, 이제라도 뒤늦은 조문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