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부산 특강 '워밍업'… 영남 민심 다지기 나서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단숨에 범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거듭된 출마 요청에도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 딱 떨어지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인데, 청나라 옹정제의 대란대치(大亂大治)를 인용한 것으로 볼 때,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로 큰 사회적 혼란이 일 것으로 보고 정치 지형의 변화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출사표를 던지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홍준표 지사는 2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제하의 초청특강에서 500여 명 청중의 거듭되는 대권 도전 요청에도 "대통령에 당선될 자신이 섰을 때 출마하겠다"며 "고맙다. 잘 생각해보겠다. 그만하자" 등으로 말을 아꼈다.

    특강에 앞서 기자단과 가진 환담에서도 홍준표 지사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 출마하겠다"며 "지금은 헌재를 지켜볼 때"라고만 답했다.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란 언제일까. 또, 그에 앞서 헌재 결정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준표 지사는 이날 특강에서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천하대란(天下大亂)이라 진단했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정치대란 △서민이 살기 팍팍한 경제대란 △주말마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사회대란 △한반도가 핵전쟁에 휩싸일 위기인 남북대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드 하나로도 오도가도 못하는 외교대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옛날 중국 청나라 때 옹정제는 천하대란은 대란대치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며 "천하대란을 위기로 보지 말고 하나의 기회로 보고 나라 전체의 틀을 바꾸고 대변혁을 하는 그런 기회로 삼는 것이 대란대치"라고 설명했다.

    결국 헌재 결정으로 현재의 대란(大亂)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이 때 대변혁의 기치를 내걸고 대치(大治)를 시도해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마 선언은 이 때 자연스레 뒤따르게 되는 셈이다.

    이날 특강에서는 곳곳에서 홍준표 지사의 대권 도전 의지가 우회적으로 드러났다.

    홍준표 지사는 △도지사 3년6개월 동안 경남도의 행정·재정개혁을 통해 1조3000억 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는 점 △국가산업단지를 40년 만에 세 개 유치해서 올해 모두 착공에 돌입한다는 점 △이 경우, 경남도의 지역생산력이 현재의 두 배 이상이 돼 향후 50년 먹고살 거리가 해결된다는 점 등 자신의 치적을 열거했다.

    이어 "대한민국도 그랬으면 좋겠다"며 "빚도 줄이고 국민이 팍팍하게 살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하면 서민들이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기자단과의 환담에서도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양측의 구애(求愛) 공세에 대해 "양쪽 정당 3선 이상은 내가 공천을 줬거나 키운 다 아는 사람들"이라며 "그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시로 연락을 한다"고, 대권주자로서 영입하려는 시도가 물밑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어 "20여 년 정치하면서 참모라고 할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며 "큰 선거를 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도와줄 참모를 찾고 있다"고 '제갈량'을 찾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누상촌에서 돗자리나 짜고 있으려면 굳이 '제갈량'은 필요 없다. 이미 경남도지사를 재선한 4선 의원 출신의 홍준표 지사가 새삼 '제갈량'까지 찾으며 준비하는 '큰 선거'라면 대선(大選)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가는데 걸림돌으로 지적되는 '당원권 정지'에 대해서도 "내가 만든 당헌·당규 아니냐"며 "그것은 마이너한 문제"라고 일축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부산=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그러면서도 대권 도전이 확정적으로 비칠 것을 경계하는 듯, 속내를 알 수 없는 발언을 슬쩍 특강 중에 던지기도 했다.

    홍준표 지사는 "성완종이를 모르는데, 자살하면서 나한테 돈을 줬다고 해서 내가 1년 10개월을 고생했다"며 "검사를 11년 하고 정치를 23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넣었으며, 정치할 때 저격수로 DJ와 노무현에게 대들고 못된 짓을 했던 업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창원에 내려와서 저녁마다 집사람과 둘이 앉아 밥 먹으면서 '좀 편하게 살 길이 없겠느냐'고 물으니 '이제 그만 출마하고 집에 가자'고 하더라"며 "'내 그것도 생각해볼께' 그런 이야기는 했다"고 덧붙였다.

    알 듯 모를 듯한 뉘앙스로 대권 도전에 물음표를 찍기는 했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결국 홍준표 지사가 출마 선언의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권 도전 여부는 언제 결단하게 될까. 그리고 그 시점은 언제가 될까.

    여권 관계자는 "헌재 결정 이후가 될텐데, 만에 하나 기각된다면 7~8월을 예상한다"며 "홍준표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대권에 도전한다면 이미 재선을 한 도지사 직은 던지고 배수진을 칠 가능성이 높은데, 보궐선거가 치러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관측했다.

    공직선거법 제201조 1항은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일 때에는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홍준표 지사의 임기 만료일은 내년 6월 30일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1년 전의 시점을 넘긴 뒤에 대권 도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지율이 어느 정도 올라오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범보수 진영의 핵심 지지 기반인 동시에 홍준표 지사의 정치적 연고지인 영남에서 지지율이 올라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홍준표 지사는 이날 특강에 앞선 기자단 환담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2~3%로 광적인 지지 계층만 응답하고 있다"며 "그것으로 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으로, 나는 (지지율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조사 지지율이 어느 정도 올라와야 정치 행보에 추동력이 붙고 세(勢)도 몰린다. 또,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 난립해 있는 수많은 후보들의 지리멸렬한 구도를 정리할 수 있는 정치적인 힘도 붙는다.

    홍준표 지사 스스로 이날 환담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대립 양상을 가리켜 "중재 역할을 할만한 자리가 오면 하겠지만,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는 것은 아직은 옳지 않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영남에서 지지율이 올라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 홍준표 지사는 이날 특강에서 영남 연고를 강조하며 '향우(鄕友)들이 좀 밀어달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내비쳤다. 향후 특강 일정이 23일 대구, 24일 울산인 점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홍준표 지사는 "(서울) 강북에서 국회의원할 때는 선거에 나가면 침 뱉는 사람도 있었는데, 고향에 내려오면 고향이니까, 선거 때도 내 욕을 안할 것이고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하더니 "실제로 해보니까 4년 동안 더러워서 치아버리고(치워버리고) 올라가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렸을 적에 부친을 따라 경남·대구·울산 등을 오가며 고생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어렸을 때 힘들게 살았는데 정치를 하다보니 영남 전체가 내 무대라, 정치를 할 때는 이게 엄청난 자산이더라"며 "대구에 가면 '홍준표가 대구 사람인데 왜 경남지사를 가 있노' 묻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다.

    나아가 "어릴 때 피눈물 나게 고생시킨 아버지가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견지명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리저리 끌고 다닌 게 (영남 전체와) 다 인연이 됐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