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 “결정 시기상조”…오송·공주역 직격탄 우려·정치부담 ‘분석’
  • 한국 고속철도 KTX.ⓒ한국철도공사
    ▲ 한국 고속철도 KTX.ⓒ한국철도공사

    KTX세종역 신설에 대한 ‘유치냐’ ‘무산이냐’를 놓고 충청권에서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4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철도 선로용량 확충을 위한 사전타당성 조사’가 올해 말까지 마무리된 뒤 국토교통부에 보고될 예정이라고 밝힘에 따라 지역민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KTX세종역 설립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가부 간 결정 이전에 KTX세종역 설립 반대급부의 사전대응이 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사전타당성 조사는 학술분야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기술분야에서 서영엔지니어링이 각각 맡아 지난 8월 25일부터 시작해 올 연말까지 진행한다.

    이번 사전타당성 조사는 당초 KTX구간인 수색~광명, 평택~오송 구간의 확충을 위해 진행돼 왔다. 철도시설공단이 6월 15일 용역 입찰공고를 냈고 2주 뒤인 29일 이해찬 의원(세종·더민주)이 임시국회에서 KTX세종역 신설 검토 요청 발언을 하면서 사전타당성 조사에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결과가 호의적으로 나온다면 이해찬 의원과 세종시는  함께 국토부 KTX세종역 신설을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가 예상되지만 KTX세종역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벽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먼저 정부가 2013년 발표한 KTX 역간 적정거리는 57㎞로, 오송역과 공주역만 보더라도 43.8㎞에 불과해 기준에 미달한다.

    또한 KTX세종역 최적지로 거론되고 있는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를 기준으로 오송역과 공주역 간의 거리를 계산해도 각각 22㎞와 21.8㎞로 초미니 구간이다.

    이와 함께 사전타당성 조사가 끝난 후에도 예산과 경제성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철도건설법 시행령 제22조는 ‘기존의 철도노선에 역을 신설하거나 증·개축할 경우 철도건설사업 시행을 요구하는 자(원인자)가 전액을 부담’하게 돼 있어 세종시가 그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신설 역의 경제적 타당성이 인정되더라도 운영수입이 비용을 초과하면 지자체나 개발사업자가 그 사업비의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세종역 용역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한 ’충남·북의 여야 국회의원, 충남·북도의회, 시민사회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며 국회와 국토부를 찾아 KTX세종역 신설을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벌집을 쑤신 듯 사태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충북도 이시종 지사가 발빠른 대응에 나서 주목된다.

    이 지사는 대전~세종~오송~청주시내~청주공항을 잇는 경전철 개념의 신교통수단을 추진할 생각이다. 이 같은 사실은 24일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여러 도정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KTX세종역 신설과 관련, “KTX 세종역 저지는 양면작전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민·관·정협의체와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현재 진행 중인 용역이 철회되도록 노력하고 용역을 추진 중인 서영엔지니어링과 한국과학기술대 등에 신설 부당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자료 제공과 지속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청권 광역철도망과 다른 경전철 개념으로 대전~세종~오송~청주시내~청주공항을 연결하는 신교통수단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이 지사가 “의욕적으로 일들을 하다보니 실수나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충북 100년 대계를 위해서는 이러한 점을 개선·보완하면서 꿋꿋이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 지사의 ‘뚝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4일 충남·북도의회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KTX세종역 신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충남도는 KTX세종역 신설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밝히지 못하고 정부의 최종 결정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KTX세종역 신설에 대한 반발이 충북도에 이어 공주시 등 충남지역으로 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희정 충남지사는 “아직 결정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결정하지 못하고, 유보적 입장만을 보이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먼저 이시종 충북지사와 충북 정치권 인사는 물론 충북도민의 들끓는 반대여론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KTX세종역이 신설될 경우 인근 충북의 오송역은 물론 충남도의 공주역까지 직격탄을 맞을 것을 크게 우려해서 일 것이다.

    지난해 문을 연 KTX공주역은 현재 하루 평균 이용객이 500여명에 그치고 있는데 세종역까지 들어서면 공주역은 이용자가 거의 없는 무용지물 한, ‘속빈강정’역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로 인해 공주역세권 광역도시발전 계획의 축소가 불가피해 충남 서남부권 균형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희정 지사가 이해찬 의원, 이춘희 세종시장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쉽게 이 문제를 풀어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KTX세종역 신설을 추진한 이해찬 의원과 세종역 신설에 찬성하는 이춘희 세종시장은 안 지사와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특히 이해찬 의원은 ‘친노’의 좌장으로 평가받고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자로 불리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안희정 지사의 입장에서 이 의원과 이 시장의 결정에 반대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허승욱 충남도 정무부지사가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슈를 말하지만 행정적 검토와 반응은 정치인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해 앞으로 세종역 신설을 둘러싸고 충남지역 내 정치적 논란은 더욱 뜨거워 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지역갈등이 확산되며 정치권까지 불씨가 번지고 있으나 국토교통부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동안 국토교통부는 KTX세종역 신설과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면 ‘역간 거리가 짧아 실효성이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보여왔다.

    그러면서 “이해찬 의원과 세종시의 요구로 일단 철도시설공단의 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용역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신공항 등 SOC사업을 둘러싼 지역갈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국토부가 또다시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국토부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해 후보지를 밀양과 김해로 압축하고도 6년여 간 애매한 입장만을 보여 극심한 지역 갈등과 후유증을 겪은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자족적 행정도시를 추구하는 세종시가 지역거점도시로 발전할 경우 인구와 재정 등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현상이 심화돼 주변 지자체 간의 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세종역 건설과 관련한 논의가 표류하고 있지만 정작 국토부는 그 어떠한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국토부가 내년의 사전타당성 조사결과가 나오기 이전에라도 나름 무엇인가 역할을 고심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